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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는 우리나라에서 벳푸나 유후인이 있는 현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히타는 그에 비해 유명하지는 않으나 최근들어 알음알음 한국 관광객들이 늘어난 모양이다.
하기사 후쿠오카와 바로 붙어 있는 시라서 후쿠오카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가볍게 들리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내가 지내는 동안에도 상점가 거리에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봤다. 어찌들 알고 오셨는지 신기하다.
다들 관광으로 왔지만 나는 관광도 여행도 그렇다고 사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으로써 2주 간 지냈다.
첫 날 히타에 도착해서 본 일몰. 
둘째날 저녁먹기 전 동네 산책하다 발견한 중화요리집이 문전성시다. 메뉴를 보니 프놈펜 라멘이라는 메뉴를 팔기에 호기심을 못 참고 주문해봤다. 집에 돌아가면 곧바로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대식가인 내가 다행스럽다. 
집 앞에 사는 나이스한 지로상은 히타시의 명물 히타야끼소바 집을 하신다. 일반 야끼소바보다 면이 바삭바삭하다. 히타시에 와줘서 고맙다며 공짜로 주셨다. 맛있었다. 가게 이름은 '야끼소바 쿠라게' 부부인 히데키상과 준코상이 호스트인 이곳은 히데키상의 고향이자 본가다.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신물이 난 히데키상은 도시가 아닌 시골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여러가지 벼 품종들을 무농약 무비료로 키워내는 벼 농가인데, 다른 작물 없이 벼만 재배하고, 또 겨울이라 특별히 농삿일 거들 것이 없었다.
첫 날 저녁. 준코상은 요리를 잘한다. 일본에 오기전 생각했던 평범한 일본 가정식이 이런 모습이라 생각했다. 
히데키상이 농사지은 쌀. 녹색쌀이라고 한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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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쌀 농가답게 쌀도 많고 마침 떡을 만드는 연말이라 수확한 현미로 떡을 만들어 우리도 먹고 가족,친구,지인,이웃들께 나누고 팔고 시간을 놀리지 않고 부지런히 지냈다.
사가에서도 떡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지만 여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과정을 함께 했다. 쌀을 씻어 며칠 물에 불리고 물을 뺀 뒤 쪄내어 떡을 만드는데, 사가때와는 다르게 떡메질이 아닌 기계로 만들어서 어깨에 근육통이 생기는 고통과 수고는 덜었다.
쌀을 씻고 물에 2일간 불린다. 
다 불리고 물기를 뺀다. 
밥솥에 넣은 뒤 
장작불에 찐다. 발 시려웠는데 딱 좋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왼쪽부터 히데키상 준코상 그리고 지인 나오키상. 떡만드는걸 도와주러 오셨다. 
떡만들기 2일차. 쌀 양이 많아 2일에 걸쳐서 했는데, 동네 지인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모두 친절하고 귀여우셨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동글납작하게 빚어 간격을 두고 판에 담아 잘 말리면 완성인데, 쥐새끼들이 맛있는 걸 알긴 아는 모양이다. 다음 날 보니 그 딱딱한 떡을 갉아 먹어 댄게 한 두개가 아니었다.
다행이 많은 양은 아니었고 멀쩡한 떡 들은 전에 받아놓은 주문대로 갯수에 맞춰 진공포장을 했다.
근데 썩 좋은 진공포장기는 아닌듯 절반은 진공인 제대로 되지 않았고, 몇 개는 아예 진공이 금방 풀려버리곤 했다.
그래도 개중에는 빳빳하게 포장된 것들도 있었는데 히데키상과 잘된것과 잘안된것을 구분하며 멀리까지 보내야 하는 배송지에 보내기 위해 잘된것은 이건 도쿄행 ~ 거리고 한 술 더떠 이건 미국행 ~ 거리며 꽤 즐겁게 작업을 했다.
멀리 도쿄에 있는 가족이나 다른 현에 사는 친구나 지인 가족에게도 택배를 부치고 포장이 잘안된건 가급적 가까운 곳이나 동네 이웃들에게 배달을 다녔다.
농업을 접하기 전에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인데, 재배한 농산물로 2차 가공을 해서 수익을 창출하는게 꽤나 중요하다.
남은 떡은 우리가 매일 점심으로 먹었는데 백미로 만든 떡이랑은 또 다른 맛이다. 조금 더 쌀의 향이 난다고 해야할까? 그 때문에 왜인지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차이는 식감에 있다. 씹을 때 마다 한알한알 터지는 맛이 있고, 기계로 치대는 시간이 일정치가 않아서 어떤건 쌀알이 뭉게진 정도가 달라서 또 그 안에서도 저마다 식감이 달랐다.
일본의 가정집에서는 등유스토브를 많이 사용하는데 히데키상네도 예외는 아니라 그 위에 주철팬을 올려 떡을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갓만들어 콩가루나 팥 등과 곁들여 먹는 떡도, 국에 넣어먹는 떡도 모두 맛있지만 팬에 구워 김에 싸서 유장에 찍어먹는 맛은 이길 수가 없다.
만들며 틈틈히 떡도 주워 먹고 맥주도 마셔가며 만들었다. 
또 먹고 싶다. 겨울이 기다려질 것 같은 맛이다. 
국에도 떡이 몇 개 들어있다. 빨간건 김치
떡 만들기가 끝나고 히데키상과 준코상이 볼일이 있어 이틀을 쉬었는데, 첫날은 동네 관광을 하며 유명한 온천도 가고 닭사시미를 파는 곳이 있어 포장하여 집에 돌아와 낮술을 먹고 한숨 잤다. 한시간 쯤 잤을까. 밖에나가 저녁 산책을 하는 중 맛있어보이는 식당이 있어 들어가보았다. 정식도 팔고 야키니쿠도 팔고 족발도 파는 별거 다파는 식당인데, 동네 할아버지들은 삼삼오오 모여 야키니쿠를 먹으며 술도 한잔씩 걸치고 얼큰하게 취해 언성도 높아져서 어딘가 우리네 갈빗집을 보는 듯 했다.
나는 정식과 족발을 시켜 먹고 집으로 돌아와 영화 한 편 때린 뒤 하루를 마쳤는데 뭔가 이제 금방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능력이 생긴 듯 느꼈다.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적응에서 오는 안정감. 그리고 두껍고 따듯한 이불이 꽤 무겁게 나를 눌러 감싸 포근해져서 간만에 기분 좋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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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똥집 사시미가 특히 맛있었다. 
쇼가야끼 정식. 맛있었다. 가족이 하는 듯 보였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아드님이 인상도 좋고 친절하셨다. 
후쿠오카 옆이라 그런지 여기도 족발 파는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술은 참았다. 점심에 마셨으니까.
다음날. 매일 아침 일과로 맡은 임무인 이 집의 개 코노와 산책하기. 전 날 기분 좋게 잠들어서일까. 아침 또한 개운하고 기운이 났다.
코노는 말을 정말 잘듣는 영민한 개인데, 앉아 엎드려 기다려 등은 기본이고 무언가 바라는게 있으면 끙끙 거린다.
그리고 또 집 안에서는 똥오줌을 안싸는 엄청난 깔끔쟁이다.
그렇기에 아침 산책하기 전까지는 집에 있기 때문에 오줌을 참는다. 그래서 아침 산책을 나가자마자 제일먼저 하는 일은 쏜살같이 달려가 오줌을 싸는 일.
가끔 히데키상도 같이 아침 산책을 하는데 언제 한번은 차를 타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차 타고 20분 내외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공원인데, 차 타기 전 오줌 누는 걸 깜빡하고 그대로 차에 태웠는데 가는 내내 이녀석 좌불안석이다. 똥 마려운 개새끼 대신 오줌 마려운 개새끼인 상황이 되어 한참을 낑낑 거리더니 결국 오줌을 지려버렸다. 녀석의 잘못은 아니었고, 차를 타고도 꽤나 한참을 참은 녀석을 생각하니 가여우면서 대견했다.
아침 산책할 때 히데키상이 동네 신사에 데려가 소개시켜준 비석. 요리사인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는데 이 비석은 주방의 신? 칼의 신? 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라고 한다. 일본 신사에는 별의 별 신이 다있다. 
코노짱 눈이 게슴츠레하다. 
오줌 싼 건 이때는 아니지만 귀여워서. 
산책할 때 마다 건고구마를 저렇게 잘라서 하나씩 던져주는데 잘 받아먹는다. 
히데키상과 코노. 일본에서 찍은 사진 중 손꼽게 맘에 드는 사진이다. 산책 후 돌아와 아침을 먹고 온타야끼가 궁금했던 터라 히데키상이 온타야끼 마을에 데려다 주었다. 온타야끼는 일본에 있는 도자기의 한 종류로 임진왜란 당시 끌려온 조선이 도공들에 의해 전해진 도자기이다. 규슈 각지에는 이밖에도 여러 조선인 도공들이 전수하여 생겨난 도자기들이 많다. 지금봐도 멋진 조선시대의 막사발들은 일본인들의 와비사비 정신과 다도문화에 적격이라 임진왜란을 두고 도자기전쟁이라고도 한다.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파낸 저 문양들. 
이건 준코상이 선물로 하나 줬다. 
가마 앞에서 히데키상. 
접시를 말려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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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마을 내 공방 구경을 마치고 히데키상과 함께 그동안 미뤄왔던 집 뒤뜰 정리와 창고 앞 밭 제초를 했다.
뒤뜰에 있는 수로가 몇 년간 낙엽과 흙이 퇴적되어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질 좋은 부엽토가 되어 있었다. 유기물을 먹고 분해하여 통통해진 지렁이 하며, 콩벌레, 게. 동면을 하기 위해 숨은 도마뱀들이 아직 잠이 덜깨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농업에 관심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분명 좋은 흙이라고 느낄 만한 흙이였다. 그래도 물이 지나도록 정리는 해야하니 우선 이 안에 있던 생물들은 다른 비슷한 환경으로 이사를 시켜주고 흙은 전부 포대에 쓸어 담아 나중에 밭을 일굴때 쓰기위해 한켠에 모셔두었다.
밭으로 이동해서 제초를 했다. 제초는 여태껏 몇 번이고 해봤는데 아무래도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제초를 하면 번뇌가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어 어딘가 명상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면 제초는 끝나있고 시간은 금새 한 두시간이 지나있기 일쑤다.
이렇게 뚱뚱한 지렁이는 처음 본다. 흙에 영양이 가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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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운전을 알려주겠다는 히데키상. 팔짱 끼고 날 매섭게 감독 중이다. 
나이스 샷
떡도 다 만들어 부쳤겠다. 뒤뜰과 밭 정리도 끝났겠다. 딱히 할 일이 없던 와중에 히데키상과 준코상의 지인들을 초대해 비빔밥을 대접하면 어떻겠나 이야기가 나와 농삿일 대신 비빔밥을 만들었다.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손님들이 오시기 전날 나물을 만들고 약고추장을 만들어 저녁을 먹었다. 그 날 저녁부터 몸이 왠지 이상하더니 그 날 밤 오한과 고열, 두통과 복통. 온몸의 근육통과 어지러움. 그리고 끈임없는 설사로 밤새 사경을 헤매며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 거렸다.
왼쪽 위 부터 당근, 마이타케, 이름까먹었는데 청경채 비슷한 맛나는 채소, 약고추장, 무나물, 숙주나물 
아무래도 비벼먹는게 익숙하지 않은 일본사람들은 비빔밥을 먹을때 어색하게 비빈다. 비빔밥은 자고로 훌렁훌렁 과감하게 비벼먹어야 한다.
그렇다. 며칠 전 먹은 닭사시미가 화근이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식중독이 우려 되긴 했으나, 한국에서는 쉽게 먹기가 어렵고 일본에서는 종종 파는 곳이 보여서 있을 때 먹자 심정으로 먹었던게 이리 되버렸다.
결국 다음날 손님이 와도 직접 비빔밥을 대접도 못하고 화장실 가던 찰나에 슥 인사를 한게 끝이었다.
그 날은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시름시름 앓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를 보냈다. 꽤나 놀란 기색으로 걱정해주는 히데키상과 준코상이 약도 챙겨주고 방에 와서 괜찮은지, 배는 안고픈지 신경써주었는데 일본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 느꼈다. 외국나와 아프면 그것 만큼 서러운게 없다던데 가족처럼 신경써주니 일본도 내 나라라고 느꼈던 첫 순간이었다.
다행이도 다음날 상태가 호전되었다. 하루종일 굶었기에 배가 고팠던 참인데 아직 자극적인건 먹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며 준코상이 죽을 만들어 주었고, 아직 무리하지 말고 쉬라며 하루를 더 쉬게 되었다.
아프기 며칠 전 동네 복지센터 같은 곳에서 여기 사는 외국인들 대상으로 일본어 수업이 있어서 참여하게 됐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터라 히데키상은 독감이나 인플루엔자로 생각해서 감기약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식중독 같다.
몸이 다 회복되고 히데키상의 친척이 한국어를 공부 중인데 이런 시골에서는 좀처럼 한국인과 대화할 기회가 없어 나더러 한국어를 좀 알려달라해서 친척이 집에 찾아오셨다. 한국어로 자기소개와 아주아주 간단한 정도로 말하는 정도였다.
히데키상과도 오랜만에 만난 터라 대화도 좀 나누고 저녁시간이 되어 근처 패밀리레스토랑에 갔다. 친척분이 저녁을 사주셔서 식사 중에도 한국어로 대화도 하고 돌아가실 때는 선물이라고 초콜렛과 양갱 등 간식거리 이것저것을 선물로 주셨다.
생각보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일본사람들이 많아서 역시나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것과 현실은 다르구나를 느꼈다.
히데키상은 새벽 일찍 일어나 11시 12시 쯤 주무시는데 저녁 먹고 나면 꼭 저렇게 거실에서 졸곤 하는데 이날은 상에 머리를 박고 잠에 들었다. 그 모습이 웃겨 찍었다. 코타츠안에 들어가면 저렇게 잠들 만도 하다.
히타에서의 일정이 슬슬 끝나갈 무렵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왔다. 일본 여행도 할겸 나도 만날 겸 히타와 가까운 후쿠오카로 왔다.
후쿠오카로 가기 위해서는 우키하시를 지나가게 되는데, 요시오상에게 연락하여 가는길에 들리기로 했다.
마침 히데키상도 사가에 친척 장례식에 가야해서 데려다 주었다. 두 분은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는사이라 이참에 인사도 나누고, 함께 찍지 못했던 사진도 찍고 요시오상이 나 온다고 컵사케 안줏거리 등 먹을거리를 선물로 주셨다.
나랑 술마시며 지냈던게 어지간히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반가운 재회 후 사가까지 가는 히데키상이 구루메 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일본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했지만, 적응 뒤의 헤어짐은 아직 적응을 못했다. 요시오상과의 재회 후 헤어짐과
"민군은 우리의 한국인 아들이니까 언제든 또 와" 라고 말해준 히데키상과 준코상과의 헤어짐은 분명 나의 국적을 모호하게 만드는 듯 했다.
헤어질 때 마다 늘 사쿠야의 말이 떠올랐다. "이 생활은 이별이 많아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아." 라는 말. 사쿠야도 보고 싶어졌다.

사세보의 호스트 타카상의 동생 야스상은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한다. 친구들이 후쿠오카에 놀러와서 온 김에 같이 야스상의 가게에 가서 함께 술을 마셨다. 미안하고 감사하게도 계산은 받지 않았다. 
다시 만난 요시오상과 마리코상.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없었는데 일본에서 생길 줄은 몰랐다. 할아버지 다시 보고싶다. '다양한 맛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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