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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마구치 - 돌아온 스오오시마
    다양한 맛의 삶 2026. 4. 30. 22:02

    예정보다 2일 정도 빠르게 야마구치에 오게 됐다. 저번과 같이 픽업장소인 오바타케역에서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다이스케상이 나를 데리러오셨다. 반년만의 재회에 약간은 어색한 느낌도 들지만 너무나도 반갑다. 스오오시마는 여기서 다리건너편에 있는 섬인데, 이쪽까지 나온김에 볼일을 보고 함께 스오오시마로 돌아갔다.
    다리를 건너 섬에 들어와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보며 가다보니 금방 집에 도착했다. 익숙한 동네 풍경과 건물들과 내가 지냈던 방. 
    마당이자 주차장인 잔디밭은 여름이 되어 푸릇푸릇한 잔디가 폭신하게 자라있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개같은 고양이 시즈는 나를 알아보기라도 하는지 냐-냐- 거리며 내게 다가와 다리에 온몸을 부빈다. 모든게 그리웠던 이 곳에서의 추억들을 머릿속으로만 추억하다 다시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다.

    마당에서 본 노을. 여름 노을이 역시 이쁘다.
    동네에 있던 오래된 폐가인데, 사연이 깊어보인다. 사람의 왕래가 없으니 나무들과 풀이 무성히 자랐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들어가면 귀신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입구는 이렇다. 밤이 되면 더 무섭다.

    시즈짱은 늘 천하태평이다. 보고있으면 내 맘도 편안해진다.


    타국에 돌아올 곳과 다시 만날이들이 있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다. 친척집에 놀러온 거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리카상과 다이스케상은 내게 일본인 부모님같은 분들이셔서 마치 본가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점심이 지난 느지막한 오후에 도착해서 도와드릴 만한 일은 없으니 저녁때까지 쉬라고 하셨다. 익숙한듯 이젠 다시 설명해주지 않으셔도 알아서 내가 지냈던 방에 짐을 풀었다.
    저번 겨울 자전거타고 바다를 구경하러 갔던 곳에 가서 수영이나 할까 싶어 수건만 한장 챙겨서 바다로 향했다. 날이 더워 자전거를 타고가며 땀이 나기 시작했고, 십여분 가량 타고 도착했다.
    사람은 역시 없었고, 팬티만 입은채 자유로운 기분으로 바다에 몸을 담궜다. 해가 가려지는 곳에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으슬으슬 추워져서 잠깐 놀다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와 씻고 좀 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어느덧 해는 거의 다 저물었고, 마당에서 시즈랑 놀고있으니 저녁 먹자며 리카상이 부르신다. 
    두 분은 회랑 술. 특히 쇼츄와 맥주를 좋아하셔서 같이 마시려고 사온 쇼츄와 선물들을 함께 드렸다. 나도 회와 쇼츄,맥주를 너무 좋아해서 덕분에 매일 저녁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늘 첫잔은 맥주로 마시는데, 땀을 뻘뻘 흘리고 마시는 맥주는 더욱 시원하고 맛있게 느껴진다. 겨울엔 뜨끈하게 쇼츄에 온수를 섞어 마셨는데, 역시 계절마다 어울리는 맛과 음식이 있는 법이다.
    늘 그렇듯 저녁부터 새벽 1시까지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리카상은 금방 마시고 금방 취해서 잠드셨고, 거의 다이스케상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동안 우프를하며 여행할 때 있었던 이야기,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들 등등.. 부모님 뻘이시지만 대화가 잘통해, 얘기가 안끊겨서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였다.

    아저씨가 엄청 좋아하는 한국영화인 엽기적인 그녀. 오카야마에 빈팆 영화 포스터&굿즈를 파는 샵에서 사왔다. 일본은 dvd를 사면 이런 책자가 같이 들어있다는데, 전세계에서 일본 밖에 이런걸 안한다고 한다. 보는 맛이 쏠쏠하다.
    내가 선물로 사온 고구마쇼츄. 말차의 향이 난다고 해서 샀는데 은은한 찻잎의 향이 났다.

    집에 있던 쇼츄였는데 바나나향같은게 났다.

    특이하게 밤으로 만든 쇼츄인데, 부드럽고 달큰한 밤맛같은게 났다.
    야쿠시마에서만 한정으로 만든다는 고구마쇼츄인데 깔끔하고 향이 가득한 쇼츄였다.

    이번 우핑을 하며 했던 업무는 겨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제초가 거의 주 였는데, 여름이라 오히려 겨울때 보다 제초할 곳이 많았고, 날이 무덥고 뜨거워서 더 힘들었다. 특히 여기는 칡이 무성했는데, 칡 덩굴이 밭을 뒤덮고 있어서 예초기 날이며, 기둥에 칡 덩굴이 걸리고 감겨 힘을 더 들여가며 해야해서 힘들었다.
    제초말고는 밭에 잡초를 일일히 손으로 제거하고, 여름작물을 수확하는 등 무 파종을 하기도 했다. 무카이시마에 있을 때는 바바가 9월이 됐으니 9월부터는 무 파종을 해야한다며 함께 파종을 했었다.
    다이스케상은 9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었는데도 아직 파종을 안하셨었는데, 이곳에 오고 며칠 뒤 비가 조금 내렸고 그 다음 날 밭에서 내게 이렇게 말하셨다. '며칠 전에 비해 더위도 한풀 꺾이고 바람도 시원해졌으니 이제 무 파종을 할 때가 됐다.' 라며 이어서  '비가 내려서 땅도 부드럽고 빗물을 듬뿍 머금고 있으니 지금 파종하는게 가장 좋다.' 고 하셨다.

    아저씨는 무의 파종부터 채종까지 직접하시는데, 무 채종이 은근 귀찮다. 씨를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를 부셔 저 작은 씨앗을 골라내야한다.
    며칠뒤 금방 순이 났는데, 몇개는 개미들과 새들이 먹어버려서 나질 않았다. 땅에 넣으면 이렇게 잎이 올라온다는게 참 신기하다.
    교토에서 유명한 고추 품종인 망간지토오가라시(만간지고추)와 피망. 한창 수확철이라 판매하고 남는 재고로 이것저것 많이도 해먹었다.
    이건 아저씨가 궁금해서 키워본 한국 청양고추란다. 먹어보니 확실히 맵다. 청양고추의 맵기가 쎄서 그런지 근처에 다른 고추를 심으면 그 고추도 같이 매워진다고 한다. 우리 눈엔 서로 다른 개체로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가 보다.
    하얀가지는 처음 봤는데, 껍질이 꽤 질기다. 소금 후추로만 간 해서 구워먹어도 맛있다. 안 쪽 살이 엄청 부드럽고 크리미하고 들큰하다.


    무카이시마의 바바는 그저 책에 9월부터 파종시기라는 것을 보고 파종을 하셨는데, 다이스케상은 날씨와 자연을 느껴가며 파종시기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꽤 놀랐다. 역시 지식보단 지혜를 터득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강한 기운을 받았다.
    책 뿐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배울때, 혹은 무엇인가를 해야할 때 보편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다 한들, 상황과 환경이 바뀔 수 있으니 유동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것이야 말로 전체를 보고 판단하는 지혜로움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 배워야하고 가르쳐야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다이스케상에게도 무카이시마의 바바는 9월이되었으니 당연하단 듯 무 파종을 하셨는데 다이스케상은 왜 9월이 되자마자 안하고 이제서야 하냐고 하니, 역시 너무 무더울때 하면 발아가 잘안되기도 하고, 너무 일찍 심으면 벌레가 다 먹어버릴 수 있어서 날씨와 자연의 흐름을 잘읽고 판단해야한다며, 9월에 파종하는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그냥 초보자들을 위한 예시이고, 농사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좋은 조언일수 있으나 정답은 아니라고 하셨다.
    이에 다이스케상에게 나는 바바가 책에 나온 그대로 9월에 하라고 했으니 9월이 되자마자 당연하단 듯 파종을 하셨지만, 8월 31일이나 9월 1일이나 날씨로 봤을 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이게 맞는건가 싶었고, 책에 9월이라고 적어 놓은건 지금 처럼 더위가 한풀 꺾이게 되는 기점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그저 알기 쉬우라고 기준점을 잡아주기 위해 9월이라 적어 놓은거라 생각했었다고 하니, 나에게 '민군은 책에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고, 자연을 이해하고 있으니 농사를 잘 지을것 같다' 고 말해주셨다.

    아저씨가 작물을 심어놓은 밭인데, 볏짚을 엮어 위에 멀칭해줬다.
    직사광선이 닿지 않아 흙이 마르지 않게해주고, 보습이 되며 미생물들이나 땅 속 생물들의 먹이가 되어주고 떼알구조가 형성되어 배수가 좋아진다.
    거저리도 있고,
    굼벵이도 살고 있다.
    다이스케 아저씨의 논밭. 벼가 점점 익어가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할 점.
    맑은 날 마당에서 본 수많은 별들. 잔디 밭에 털썩 누워 잠깐동안 바라봤다. 별구경은 질리질 않는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유기•순환•자연농에 더 관심이 생겼고 배우는 중이라고 하니, 아저씨가 지인 중에 자연농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 하여 밭에 견학을 왔다. 놀랍게도 저게 밭이다. 완두콩밭.
    이건 토란밭. 잡초와 싸우지 않고 자연을 이해하고 인간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는 자연농. 왠지 모든 작물들이 기분 좋아보인다.

    웬 벼를 빠케스에 키우고 계신다. 여쭤보니 실험중이시라는데, 꽤나 잘자라고있다. 밥한공기 이상은 나오실거라고 농담을.


    또 이번 우핑은 밭일 외에도 멧돼지 사냥할 시기가 되어 멧돼지사냥도 함께할 수 있었다.  다이스케상은 야생동물 수렵면허를 갖고 있어서 직접 멧돼지도 잡으시고, 도축도 하신다. 
    이곳은 멧돼지로인한 농작물 피해가 심심찮은 듯 한데, 시골에서 최대한 자급자족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직접 멧돼지를 잡는게 농작물피해도 줄이고, 잡은 고기는 먹기도 하고, 나라로부터 현상금도 받고 이래저래 좋은 듯 하다.
    나가사키 사세보시의 호스트 타카상과 멧돼지를 잡았던 이후로 두번째 해보는데, 다이스케상은 덫을 이용해 사냥을 한다.
    덫 안에 먹이를 두고 유인해 잡은 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한 뒤 긴 봉 끝에 칼을 달아 창처럼 사용해 대동맥을 찔러 최대한 고통없이 한 번에 죽인다.
    며칠간 덫을 확인해 가며 먹이를 놓으니 금방 멧돼지가 잡혔는데, 조금 어린 멧돼지가 잡혔다. 작아서 그런지 속박하고 대동맥을 한 번에 찔러 죽이는게 조금 어려워 몇 번인가 칼을 찔렀는데, 생명을 죽인다는게 유쾌한 일은 아닌데다, 고통을 더해 죽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다이스케상도 매년 하는 일이지만 늘 마음이 좋지 않아서 하고 싶진 않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한다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목과 입에서 피를 뿜어대면서 죽는 모습은 정말로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다. 더욱이 어린 개체라면.

    고통없이 끝내주지 못해 마음이 걸렸다.


    농작물피해와 전염병을 옮긴다고 유해동물이라 한들,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과 기준에서 유해동물이지, 넓게 자연의 관점에 볼 때는 유해동물이 아닐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의미없는 살생을 하는 기분이 든다.
    잡은 멧돼지는 다이스케상의 양계장이 있는 산 속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매달아 놓고 도축을 한다. 원래는 가죽을 따로 칼을 사용해 벗겨내셨는데, 더 간단한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화염방사기를 사셨다며 불로 털을 다 지지고, 긁어내는데 처음 사용해서 요령이 없어서 인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듯 했다. 그렇게 1차로 털을 정리한 뒤 매달아 내장을 제거하고, 부위별로 나눴다.
    내장도 먹을 수 있다며 버리지 않고 심장, 간, 허파, 뽈살, 혀도 따로 모아두셨다가 저녁에 손질한 다리살이랑 함께 밖에서 바베큐파티를 했다.
     

    징그럽지만 몰입해서 하게 된다. 나가사키에서도 멧돼지를 해체하며 느낀거지만 뭔가 인간 내면에 자리한 동물적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생후 몇개월 되지 않은 녀석이라 그런지 냄새도 안나고, 확실히 사이즈도 작다.
    멧돼지 꼬추. 당근 도려내고 먹었다.
    뒷다리살인데 허연 육색이 닭고기 같기도 하다.
    소금후추 간 한 뒤 호일에 싸서 숯불에 한참 구워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어린멧돼지라 살도 질기지 않고, 돼지고기랑 닭다리를 섞은듯한 맛이였다. 여태 먹은 멧돼지 요리 중 최고.
    멧돼지의 갖은 부속들인데, 내가 직접 다시를 뽑아 만든 야끼니꾸 소스를 묻혀 구워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간은 조금 덜 익혀져서 무서웠는데, 아저씨는 여태 문제된 적 없었다고 하여 에라모르겠다 하고 먹었는데 나도 아직까지는 문제 없다.
    바베큐파티에 초대된 아저씨 친구분이 찍어주신 사진. 아줌마 아저씨는 원래 귀찮아서 바베큐파티를 거의 안하는데, 모처럼 나도 왔으니 했다고. 감사하다.


    하루 업무는 오후 3시 쯤 되면 끝이난다. 거의 맨날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했는데, 첫 날에 갔던 바닷가 말고 조금 더 넓고 화장실도 있는 곳에서 했다. 사람은 항상 나 밖에 없어서 팬티만 입고 들어갔는데, 수영이라기 보단 그냥 물에 둥둥 떠있다가 모래사장에 젖은채로 철푸덕 누워 몸을 앞뒤로 돌려가며 햇빛에 굽듯 해를 쬐는 것을 반복하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몇시간 그러고 놀다가 해먹에 누워 책도 읽고 낮잠도 자다보면 어느새 해가 많이 내려와 있었다. 
    겨울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매일 저녁은 물론 가끔 아침식사 또한 내가 요리를 해서 함께 먹었는데, 이번에도 한국음식은 물론 여러 음식을 해먹었다. 

    저 방파제가 있어 파도가 잔잔하다. 덕분에 파도에 떠밀려온 스티로폼 쪼가리를 흉내내며 바다에 둥둥 떠있기 좋다.
    아무 생각이 없이 지냈다.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햇빛이 쬐고 싶으면 모래사장에 아무것도 깔지않고 철푸덕 누워 잠이 들고, 시원한 바람이 쐬고 싶으면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고, 졸려오면 잔다.
    밭일 마치고 돌아왔는데 마당에 뱀이 있어서 잡았다. 뱀고기는 흥미가 없어서 먹진 않았다.
    가지가 많아서 처리하느냐고 전도 부쳐먹고 볶음도 해먹고 별거 다 해먹었다.
    만간지고추랑 가지 넣고 멧돼지 장조림도 해먹었다.
    마트에서 맨날 사시미용 생선 필렛을 사오셨는데, 사시미를 떠서 먹기도 하고, 이렇게 샐러드를 만들어서도 먹었다. 올리브유, 산미를 더할 우메보시를 다져 넣고, 아저씨가 키운 카보스즙, 소금간 약간, 피쉬소스 ,간장, 참기름, 후추, 다진 시소를 섞은 양념을 먹고 싶은 생선과 야채나 과일과 잘 섞어 냉장고에 10분이상 절여뒀다 먹었는데 여름 별미다.
    하얀가지로 만든 가지구이. 양식이 땡겨서 토마토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먹고 남은 토마토소스를 얹어 먹었다.
    란코시 호스트인 모에상이 선물로 주신 직접 키운 통밀가루로 팬케익을 만들어 먹었다. 꼬소하고 밀가루 향이 은은하니 맛났다.
    모에상의 통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섞어 또띠아를 굽고 남은 토마토소스를 얹어 먹었다.
    다이스케 아저씨가 짜장면이 먹고 싶다 하셔서 짜파게티라도 사다가 야채랑 고기를 스프에 볶아 간짜장처럼 해드렸다. 다행히 짜장면 맛이난다며 좋아하셨다.
    술 진탕 먹고 해장으로 끓여먹은 야채라면. 사실 콩나물 넣은 시원한 라면이 먹고 싶어서 전날 술을 진탕 마셨다. 콩나물을 사려고 마트에 갔는데, 일본에선 좀 처럼 콩나물을 팔지 않는다. 평소 가던 마트가 아니라 다른 마트에 가보니 팔길래 냉큼 사왔다.


    이전에도 놀러가서 뵀던 적이 있는 다이스케상의 한국인 친구. 정철 아저씨네에 놀러갔었는데, 이번에도 멧돼지고기로 김치찌개를 끓여서 가져갔다. 이번에는 정철아저씨의 일본인 아내분까지 계셨는데, 아내분이 만들어주신 잡채와 내가 만든 멧돼지 김치찌개를 같이 먹으며 저녁을 함께했다. 
    다이스케상도 어딘가 한국인 같은 느낌이 있는데, 정철아저씨네 까지 놀러와서 한국음식을 먹고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리카상과 정철아저씨의 아내분은 돌아가고 아저씨들이랑 같이 얘기나누며 술을 마시다보니 이번에도 새벽 4시. 늦은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동갑내기 친구들이랑도 이렇게까지 술을 안마시는데, 아무래도 나도 아저씨가 됐나 싶다.

    다이스케상이 한국어 공부할 때 보는 책. 한국사회나 역사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함께 배울 수 있어 괜찮은 듯. 한국말을 능숙하게 했다면 다이스케상은 한국인으로 보일듯한 체격과 외모다.
    멧돼지 김치찌개는 진짜 별미다. 맛이 없을 수 없는게, 마트에서 파는 키무치 성분표를 보면 msg가 첨가되어 있다. 다른 간 할 필요가 없다.
    정철 아저씨 아내분이 만들어주신 잡채. 맛있다고 하니 다시다를 슬쩍 보여주셨다.
    아저씨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밤을 지샜다.


    스오오시마에 돌아와 다시 만났던 사람 중에는 신상도 있다. 저번에 신상네 집에 초대받아 쟈쟈멘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번에도 내가 다시 스오오시마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저번보다 더 맛있게 쟈쟈멘을 만들어 주신다며 집으로 초대해주셨다.
    결혼은 안하고 독신으로 살고 계시지만, 아들이 있었다면 내 또래일거라며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신상과의 인연은 참 특이하다 생각하는게, 내가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하기로 마음 먹게 된 계기가 모리오카의 쟈쟈멘 때문이다. 헌데, 이렇게 여행 중에 쟈쟈멘 때문에 인연이 생겼다는게 참. 음식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같은 존재같단 생각이 든다.

    신상의 집 거실. 취미도 즐기고 혼자 재밌게 잘 사신다. 나도 독신으로 산다면 이렇게 살고 싶다.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 만드셨다는 쟈쟈멘! 남이 만들어 주는 건 다 맛있지 뭐. 특히 추억이 담긴 음식이라면 더더욱.
    나는 일부러 면을 좀 끊어 먹어 남긴 뒤
    치탄탄(다 먹고 면수를 부어 먹는 계란스프)을 해서 숟가락으로 국물과 면, 건더기를 함께 후루룩후루룩 떠먹는걸 선호한다.


    이번엔 처음 만나지만 새롭게 만난사람들도 있었다. 다이스케상이 심리학, 심리상담 관련해서 정기적으로 회의도 하고 회식도 하는 모임인데, 마침 내가 지내는 동안 회식이 있다고 하여 나보고 함께 가보지 않겠냐 하셨다. 
    다이스케상은 사람이 많이 모이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人間観察'(인간관찰) 하러 가는 것이 흥미롭다며 간다고 하셨다. 나도 인간관찰하는데에 흥미가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함께 갔다.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은 거의 다 들여다 본 듯 했지만, 이런 회식 자리는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고.
    야마구치시내 한 야키니꾸 무한리필집에서 회식이 이뤄졌는데, 16명 정도 되는 많은 인원이였다. 친한사람끼리 앉게 될 수 있으니, 총무역할을 맡으신 어느 아저씨가 번호를 적은 종이를 나눠주고 번호에 맞게 자리를 나눠 착석했다. 다이스케상과는 가장 멀리 배치 되었고 낯선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자리를 하게 되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나는 다이스케상의 소개로 오게 된 한국인이라고 하니 다들 흥미로워하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다이스케상의 집에 우프라고 하는 것을 통해 머무르고 있고, 현재 워킹홀리데이로 일본 전국을 여행중이며... 늘상 하던 자기소개를 끝으로 한국에 궁금한 점들의 질의응답이나 개인적으로 나에게 궁금한 점들, 나 또한 이 모임이나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었고, 다들 무척 친절하신 분들이셨다. 식사 제한 시간이 90분이였는데, 대화도 나누고 고기도 구워먹고 술도 마시느랴,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갔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이스케상과 나는 술을 마셨기 때문에 리카상이 차로 데리러 와주셔서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며, 꼭 아빠 모임에 따라간 아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이였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 아들을 데리러 온 것 같은..

    야끼니쿠 사진은 못찍고 후식으로 먹은 냉면사진 뿐이다. 야키니쿠집에서 냉면은 대게 이런느낌이다. 김치가 올라간.


    이런 기분은 특히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 더욱 그랬다. 한번은 오후 업무를 마치고 슈난시 내에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독립극장에 갔었다. 두분은 영화를 좋아하시고, 한국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이 곳에 자주 오시는데, 나랑 같이 한국영화를 봐보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갔다. 가는 길에 가끔 오신다는 츠케멘 집에도 들러 식사도 하고, 시내 구경도 하고, 영화도 보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온천도 함께 가곤 했는데, 꼭 어릴때 아빠와 함께 동네 목욕탕에 온 기분이였다. 온천에 함께 온 부자지간을 보면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행복의 나라’ 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환데,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다.

    몇 십년 전부터 운영해던 꽤 유서깊은 이지역 영화관인데, 경영난때문에 폐업했다가 몇 년 전 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다시 운영되고 있다고. 시설은 확실히 노후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래된 에어컨이 엄청 시끄러워 관람에 조금 방해가 될 정도였지만, 오래된 극장 분위기가 좋았다. 특이하게 이 영화관은 한국영화를 다양하게 상영하는데, 거의 한국에서는 개봉했었는지도 모르는, 인기가 없었던 듯한 영화가 많았다. 아마 한국에서 힛트를 치지 못하고 악성재고 같은 느낌이 된 영화를 싼 값에 사와서 상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 독립극장이다 보니 예산이 적어서 그런 듯.

    영화관 가는 길에 먹은 츠케멘. 맛났다.
    일본 온천이나 목욕탕은 이런 휴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좋다. 함께 간 사람을 기다리기에 딱.



    저번보다 더 길게 2주가 넘는 시간을 지냈는데 어느새 또 떠날 때가 왔다. 이번 일정을 끝으로 지난 약 1년간의 여행이 끝이 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리카상이 차려주시는 아침식사를 먹고 짐을 챙겨 오바타케역까지 두분이 배웅을 받았다. 악수와 포옹을 하고 다시 오라며, 다시 오겠다며 인사를 나누고 개찰구를 통해 들어가 두분과 헤어졌다.
    완전한 이별은 끝났기에 미련같은 것은 남지 않아 깔끔한 느낌이지만, 기약없는 만남이 약속된 이별은 뒷맛이 텁텁하고 칼칼하다.
    스오오시마는 이제 내게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 같은 느낌이니까 분명 다시 돌아오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 평생 채울 수 없을 줄 알았던 부모님의 빈자리를 두 분이 잠시나마 채워주셨다. 본가가 있다는 느낌을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느낌일까?

    •••











    붕 뜬 마음으로 전철을 타고 시모노세키역에 도착해 터미널에 짐을 두고 나왔다. 해질무렵 출항이라 시간이 남아 점심도 먹고 근처를 둘러봤다. 그리고 배를 타기 전까지 오랜만에 만날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사가에서 만난 케이코상과 아이들.
    시모노세키와 가까운 기타큐슈에 살고 계셔서 연락을 드려봤는데 흔쾌히 만나자고 말씀해주셔서 짧은 시간이였지만 재회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반년만에 만났는데, 그새 키도 더 크고 말도 많이 늘어있었다. 나를 특히 좋아하던 장녀 호마짱이 나를 잊지 않고, 변함없이 좋아해줘서 너무 기뻤다.
    아이들이 근처에 있는 작은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 해서 놀이기구도 같이 타고, 공원에서 도토리를 줍고 놀다보니 어느새 금방 시간이 지났다.
    터미널에 다시 돌아와 배웅을 받는데 호마짱이 가지말라며 팔을 붙잡고 우는데,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다시 일본에 올거냐며 꼭 와야한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겨우 보내줬다.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데 십여분 기다렸을까.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비자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 있냐는 심사관의 물음에 없다고 하고 도장을 받아 입선을 했다.
    배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여권을 검사하는 승무원이 아까까지 웬 아이 두명이 배 아래에서 나를 목이터져라 불러댔었다며 귀띔을 해주셨다.
    예약한 다인실 방에 짐을 풀고 라인을 켜보니 나랑 헤어지고 울고있는 호마짱에게 승무원이 1층 터미널 바깥에 가면 나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해서 20분간 나를 계속 부르며 애타게 기다렸다고.
    호마짱이 아쉬워하며 풀이 죽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귀엽고 안타까웠다.

    시모노세키는 조선시대때 조선통신사가 처음 일본 본섬으로 들어오게된 관문같은 곳이다. 나도 당시 선조들을 본 받아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가면 이 시대의 조선통신사같은 사람이 되어 한일 양국의 갈등과 문제 해소와,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관계가 유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뭔가를 하고 싶다.
    아카마신궁에서 아이들과 한 컷. 이곳은 과거 조선통신사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들 놀아주느냐고 같이 놀이기구를 탔는데 꽤 재밌었다.
    같이 신나게 도토리 줍다가 냅다 던지는 호마짱.
    초등학교 올라가서 히라가나도 배우더니 나 주려고 편지도 써왔다. 살면서 받은 편지 중 가장 기쁜 편지지 아닐까 ..
    마지막으로 다같이 기념사진.
    짐 챙기고 이제 배타러 간다니까 팔을 붙잡고 안놔준다. (나 힘들까봐 가방도 대신 들어줬다.)
    여자친구랑도 이렇게 애틋하게 이별해본적이 없는데 ..


    배를 타고 국경을 넘는게 처음인데 생각보다 재밌다. 비행기보다 더 자유롭고, 한국과 일본 그 사이 어딘가 애매한 지점에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배 내부를 전체적으로 한 번 스윽 둘러보고 내부에 구비된 목욕탕에서 목욕 후 매점에 들러 마지막으로 일본 컵라면과 맥주로 간단히 저녁을 떼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에선 본 적 없는 폰트로 써진 문구들이 어딘가 묘하다.


    이제 하룻밤만 자고나면 한국에 도착한다. 다이스케상이 한국에 갈 때 배를 타고 갔던 것 처럼.
    언뜻보면 한국인 같아서 조상님 중에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을 것 같은 다이스케상이 부산으로 가는 배에서 저멀리 한국 땅을 보고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단 감정을 나도 느끼며 다시 우리나라 땅을 밟고 싶다.
    다음날. 갑판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입항시간보다 이르게 일어났지만 외부로 출입이 불가하여 안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일출을 기다렸다. 날씨가 흐려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날이 밝고 나니 저 멀리 부산이, 우리나라 땅이 보였다.
    이제 일본에서의 여정도 진짜 끝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라는 생각을 확신했다.
    다이스케상이 선상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한국땅을 보며 이런 감정이 였던건가 싶은 생각을 하다보니 금새 도착해 약 1년만에 우리나라땅을 밟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정겨운 부산사투리. 일본에서는 맡을 수 없던 한국 특유의 매콤하고 얼큰한 냄새. 그리고 한국어로 쓰여진 수많은 간판들. 한국인인 나에게 당연한것인데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째 기분이 이상하다. 이제서야 내가 귀국 했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긴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부산 살 때 자주 오던 봉래산. 이만한 산이 잘 없다.
    이런거 왠지 너무 한국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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